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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한국 대학을 위한 변명[동아광장/김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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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61회 작성일 20-02-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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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위기 핵심에는 교육부의 失政
등록금은 묶고 경쟁력엔 관심 없고 국회-정치권에 자랑할 실적만 골몰
이러곤 글로벌 명문대 나길 바라나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전쟁과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는 강국이 되기까지 대학은 인재를 길러내고 기술을 선도하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대학은 가난한 촌놈에게는 ‘더 괜찮은 여건’을 내 자식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상승 이동의 발판이기도 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정의로운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민주화의 기지였다. 지금은 어떤가? 세계 10위 경제 대국에 어울리는 과학이 축적되는 곳도, 인문적 지식이 과학기술과 만나 산업의 질적 도약을 이끌 역량을 보유한 곳도 아니다. 부모 세대의 불평등이 자녀 세대에서 재생산되는 절망과 통곡의 공간이다. 조국 사태에서 보듯, 민주주의의 토대이기는커녕 검찰의 수사 대상이다. 한국 대학은 경제, 사회, 정치적 역할과 정당성을 모두 상실한 채 위기를 맞고 있다. 수험생 규모가 입학 정원보다 작아진 인구구조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대학의 위기를 진단하자면 교육부의 정책 탓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 결과에만 촉을 세우는 정치인과 그에 편승해 대학을 좌지우지하려는 관료가 문제다. 등록금과 입시 정책에서도 정치권과 교육부의 철학 결핍과 무책임이 드러난다. 여야 모두 등록금 부담 완화를 약속하나 줄어든 대학 재정을 어떻게 확보하고 교육의 질과 연구의 경쟁력을 어떻게 끌어올릴까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대통령 공약인 “기초 연구에 대한 국가 투자를 2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은 유효하나 그 안을 보면 인문사회 예산은 오히려 삭감됐다. 입시제도를 결정하기 위해 실시된 공론조사는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방침 발표에 갑자기 사라졌다. 정부와 교육부가 보는 대학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교육부는 투자는 없이 입학 정원부터 등록금, 커리큘럼, 재정 운용까지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며 규제의 울타리에 대학을 묶어두려는 시도를 해왔고, 이를 고등교육 정책이란 이름으로 포장해왔다. 국가가 대학 교육의 책임을 지고 과감한 투자를 하는 유럽이나, 감독과 관리를 철저히 하되 자율권을 주는 북미권과는 매우 다른 전개다. 민간에 맡기지도, 국가가 나서지도 않는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자료에 의하면, 분석 대상 18개 대학 중 대학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100% 확보한 곳은 없으며, 90% 이상 확보한 대학도 네 곳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8년 내놓은 자료는 더 놀랍다. 고등교육을 위한 공공재원 비중 순위는 35개국 중 31위이다. 2019년 대학생 1인당 정부 부담 공교육비는 3985달러(약 476만 원)로 OECD 평균인 1만267달러(약 1226만 원)보다 한참 적다.

그러는 사이 대학 내부도 병들고 있다. 제도적, 재정적 지원 없이 의무만 강조한 결과, 비정년트랙 교원과 계약직이 증가하고 있으며, 교육과 연구의 질은 떨어져 간다. 혁신적 프로그램 개발을 통한 미래 먹거리 창출은 엄두도 못 낸다. 대학들은 정부가 찔끔찔끔 나눠주는 연구비와 지원금에 기댄 채 연명하고 서로 경쟁한다. 그 결과 교육부는 거역 불가의 ‘갑’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학의 경쟁력도 날로 허약해졌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대학 시스템의 질은 2012년 144개국 중 44위였지만 2017년 137개국 중 81위로 변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교육경쟁력 평가에서 대학 교육경쟁력은 2012년 59개국 중 42위였지만 2019년에는 63개국 중 55위로 급락했다.


나는 2018년 9월 1일 교육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SSK(Social Science Korea) 사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후배의 전화를 잊지 못한다. 자신의 사업단이 연구 지속을 위한 심사를 오래전에 받았는데, 어제 탈락 통보를 받았으니 그 사업 때문에 단념한 시간 강의와 연구 프로젝트를 다시 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한국에서 해고 통보를 하루 전에 하는 조직은 한국연구재단이 유일할 것이다. 철저히 ‘을’의 위치에 있는 젊은 박사가 겪는 설움이라고 하기엔 무심한 연구 행정이 지나치게 가혹하다. 약자에 대한 교육부의 무관심을 보면, 대학 정책에 대학을 통한 불평등 구조 개선과 상승 이동 기회 제공 의지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일을 겪은 후 참석한 SSK 연구 사업설명회에서 교육부 관료는 “SSK 사업의 선정을 위해서는 연구 결과가 국회 입법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육부의 외형적 실적을 과시하고 싶은 탐욕이 그대로 나타난다. 교육부의 대학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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